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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3. 13.

    by. 호위무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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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세상이-우리를-공주-취급해
      온-세상이-우리를-공주-취급해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도서의 책소개로 독일 페미니즘의 트렌드와 담론을 이끄는 60만 글로벌 인플루언서 타라-루이제 비트베어가 여성혐오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책이다. 지금껏 성차별 발언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피해 여성의 슬픔을 나누는 페미니즘서가 익숙했다면, 이제부터 1990년생 페미니스트 타라의 호쾌함에 풍덩 빠져볼 차례다.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도서의 책소개

      여성을 ‘공주님’이라 일컫는 일이 빈번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대접은 요원하고 취급만 당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럴 때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작게 만드는 것은 ‘나한테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내면화된 여성혐오다.

       

      이 책은 대중문화에 깃든 ‘남성의 시선’부터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여성혐오 범죄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 주변에 퍼져 있는 가부장적 사고를 지적하고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인지감각을 일깨운다. 또한 시종일관 유쾌한 태도로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여성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불균형한 세상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분노로 응수하는 대신 여성들의 손에 삐딱한 유머를 무기로 쥐여주는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는 “역사 속에서 여성스럽다고 지칭되는 모든 것이 어떻게 평가절하되었는지 보여준다”, “재미있지만 고통스러운

      책”이라는 각종 매체의 호평을 받으며 출간 직후 독일 아마존과 대표 시사 주간지 『슈피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상에 넘쳐나는 은근한 차별이 피로했다면 이제 당신이 이 책을 만날 차례다. 여자라면 저절로 끄덕여지는 경험담과 유머로 되받아치는 무용담을 깔깔거리며 읽다 보면, 차별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세상에 태클 한번 걸어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저자소개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Tara-Louise Wittwer)

      독일 『슈피겔』 베스트셀러 작가. 1990년생 페미니스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계정을 생성한 지 4년 만에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합쳐 60만 팔로워를 보유한 글로벌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문화학을 전공하여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깃든 여성혐오가 어떻게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는지, 시대에 뒤떨어진 성 역할이 어떻게 현대에도 재생산되는지를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널리 퍼트리며 페미니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2023년 독일에서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골든 블로거에서 ‘올해의 블로거상’을

      수상했다. 여성혐오를 시원한 입담과 유쾌한 반격으로 비꼬는 영상을 게재하면서, 콘텐츠를 소비의 차원을 넘어 정보와 오락을 접목시킨 인포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킨 영향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저자의 사적인 경험과 통쾌한 문화 비평을 오가는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는 출간 즉시 많은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스물두 살 여성인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 “이 책을 통해 마흔인 나조차도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을 재평가할 수 있었다”라는 리뷰를 받으며 페미니즘이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에 대한 이야기임을 증명해 주었다. 

       

       

       발췌문

      내 얼굴에는 커다란 점이 하나 있다. 온라인에 내 얼굴이 노출되기 전까지는 이 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내 점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내 사진을 확대해 괜찮은지 확인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괜찮다는 건 과연 누구에게 괜찮다는 말일까? 나에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언제나 진부한 표현들 속에 갇혀 살았다. 유행만 좇는 뻔한 베이직걸, 다른 여자와 다르다고 우쭐대는 픽미걸, 싼티 나는 여자, 핑크로 치장한 공주병 등 여성에게 적용되는 도식 안에서 내 자리를 찾아보려고 고군분투했다. 사랑을 갈구했고,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와 여성혐오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평가받는 동시에 평가받지 않기 위해 남을 평가했다.

       

      여성스러운 것에는 수준이 낮고 단순하다는 꼬리표가 붙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나도 〈가십걸〉이나 〈섹스 앤 더 시티〉가 예술적으로 작품성이 대단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함을 지르는 관중들에게 둘러싸인 스물두 명이 공 하나를 쫓으면서 득점은 거의 내지도 못하는 그 스포츠도 첨단 과학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지 않나?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집단 안에 여성의 비율이 적을수록 여성의 발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의 발언은 집단 내 남성 비율과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을 차지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말을 많이 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 여성이 시끄럽다는 인식은 단지 ‘여성이 말은 한다’는 자체만으로 느끼는 착각이다. 한 집단 안에서 여성이 발언하는 시간이 남성과 동등해지려면 실제 여성 비율은 60~80퍼센트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의 목소리가 크다고 느끼는 건 착각이다. 오히려 여성의 목소리가 커져야 평등해진다. 그러니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자리를 차지해라. 미안한데, 하나도 안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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